헤르초게나우라흐, 독일--(뉴스와이어)--스포츠 회사 푸마(PUMA)와 월드클래스 홍보대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 브랜드인 회사 창립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 75년 스포츠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공유했다.
푸마의 CEO인 아르네 프룬트(Arne Freundt)는 “75년 동안 푸마에서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바로 목적”이라며 “스포츠와 문화의 미래 역사를 쓰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Usain Bolt)는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Herzogenaurach)에 위치한 회사 본사에서 푸마의 다른 전설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그들 경력의 하이라이트와 이 브랜드와 협력해 어떻게 스포츠의 역사를 썼는지 논의했다. 그랜드 슬램 6회 우승자 보리스 베커(Boris Becker), 1991년 FIFA 올해의 축구 선수 로타어 마테우스(Lothar Matthäus), NBA 명예의 전당 헌액자 랠프 샘프슨(Ralph Sampson) 및 육상 세계 챔피언 린포드 크리스티(Linford Christie), 하이케 드레흐슬러(Heike Drechsler), 아르망 “몬도” 뒤플란티스(Armand “Mondo” Duplantis), 콜린 잭슨(Colin Jackson), 멀린 오티(Merlene Ottey), 야로슬라바 마우치크(Yaroslav Mahuchikh) 등이 자리를 빛냈다.
우사인 볼트는 “성공은 배경, 훈련, 헌신, 희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거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대회에 참가할 때는 즐거웠다. 나는 단지 나가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하기 위해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긴장을 풀고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게임의 의미를 바꿨다”고 전했다.
17세에 첫 윔블던 우승을 차지한 보리스 베커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성공한 것이 어떤지 회상했다.
“젊음의 아름다움은 어느 분야에서 우승을 차지하기엔 너무 어리다는 한계를 모르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아침에 라커룸에 가면 제가 너무 어려서 다른 남자들은 마치 화성에서 온 사람처럼 쳐다보곤 했다. 이런 경험이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켰다.”
멀린 오티도 어린 나이에 운동을 시작했지만 50대에 이르러서야 국제 대회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청중에게 그녀를 계속해서 나아가게 한 것은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런 열정이 있으면 어떤 도전에도 정신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기꺼이 도전에 응할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패배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 기회를 위해 항상 반격한다.”
푸마의 창립자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sler)는 선수들에게 퓨마의 민첩성과 성능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푸마의 육상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하고 기록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 스파이크부터 17세의 보리스 베커가 윔블던을 제패할 때 사용했던 테니스 라켓, 로타어 마테우스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가 애용한 축구화까지 푸마는 75년 동안 이 비전을 지켜왔다.
1992년과 2000년 멀리뛰기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하이케 드레흐슬러는 “일반 신발은 불안정해서 멀리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푸마와 함께 작업하면서 피드백을 줬고 정말 딱 맞는 신발을 제작했다. 이 신발의 많은 덕을 봤다”고 전했다.
푸마는 역사에서 1952년 나사식 스터드가 장착된 최초의 축구화, 1968년 전설적인 브러시 스파이크, 1986년 선구적인 RS-컴퓨터 신발, 1991년 최초의 끈 없는 스포츠 신발 DISC, 가장 최근에는 러닝슈즈용 푸마의 최첨단 폼 기술 NITRO 등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운동선수가 최고 수준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최초의 문화를 확립했다.
이벤트의 다른 인용문
승리하는 사고방식:
랠프 샘프슨: “대중의 기대가 높았지만 내 기대는 더 높았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첫 시즌에서 처음으로 올스타전을 치렀고 나머지 경기는 3~4년 후에 참가했다. 그 후 올스타전의 최우수 선수(Most Valuable Player)가 됐고 결승전에도 진출했으며 좋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 오늘도 내 기대는 매우 높다. 나는 어떤 일에 임하든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최선을 다한다.”
야로슬라바 마우치크: “센티미터 단위로 중요하며 이를 뛰어넘기가 정말 어렵다. 하지만 물론 세계 신기록을 세우겠다는 목표도 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도 포기하지 않는다.”
아르망 “몬도” 뒤플란티스: “장대높이뛰기 이전의 생활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는 장대높이뛰기 전문 선수였고, 루이지애나에 있는 집 뒷마당에 전체 장대높이뛰기 세트를 지었다. 억지로 한 건 아니지만, 장대는 항상 내 눈앞에 있었다. 꼭 도전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최소한 시도는 해야 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모든 조각이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것 같아서 나는 계속 이 길을 걷고 도전할 것이다. 내 안에 훨씬 더 높은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린포드 크리스티: “내가 얻은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 경주는 힘들수록 더 흥미롭다. 전투가 치열할수록 승리는 더 값진 것과 같다. 때로는 승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승리의 느낌을 얼마나 즐기는지 이해하기 위해 패배해야 할 때도 있다. 지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지만 노력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푸마와의 관계
콜린 잭슨: “수년에 걸쳐 매우 젊고 긍정적인 태도를 경험했다. 우리의 전성기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정말 보기 좋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족과 같이 대화하는 이유이고, 가족이 따뜻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한다. 동지애를 나눌 수 있다.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푸마 브랜드의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로타어 마테우스: “푸마와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항상 특별했다. 아버지는 푸마가 직장이었으며, 아침에 공장을 열고 가장 늦게 퇴근하곤 했다. 나는 옆 건물의 공장 옆에 살고 있었다. 이는 푸마 사무실과 내 침실이 불과 2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항상 최고의 신발을 가질 수 있었으며 푸마 킹(PUMA KING)은 환상적인 신발이었다. 플레이할 때 굉장히 부드럽고 편안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들라면, 득점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신발이 최고의 신발인 이유이다.”
푸마 소개
푸마는 신발, 의류 및 액세서리를 디자인, 개발, 판매 및 마케팅하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 중 하나이다. 75년 동안 푸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운동선수를 위한 빠른 제품을 만들어 스포츠와 문화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 푸마는 축구, 러닝 및 트레이닝, 농구, 골프, 모터스포츠와 같은 범주에서 성능 및 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라이프 스타일 제품을 제공하며, 유명 디자이너 및 브랜드와 협력해 스포츠의 영향을 스트리트 문화와 패션에 소개한다. 푸마 그룹은 푸마, 코브라 골프(Cobra Golf) 및 스티치드(stichd)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120개 이상의 국가에서 제품을 유통하고 전 세계적으로 약 2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본사는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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